거리는 시간의 퇴적이 쌓여 이루어진다. 해방촌은 남산 아래 언덕에 위치한 마을이다. 1945년 광복 이후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이었던 곳을 버리고 조국을 찾았지만 정작 귀환 동포가 설 땅은 없었다. 해방촌은 갈 곳을 잃은 그들이 정착하며 형성되었다. 오늘 날 해방촌은 많은 이들이 찾는 핫플레이스다. 기존의 고유한 해방촌에 덧입혀진 오늘 날 이곳은 이국적인 분위기로 여느 곳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가파른 언덕을 오를수록 기존 해방촌의 색이 짙어지는데 이로공작은 그 골목에 자리해있다.  
 
 
시끌벅적한 해방촌 초입을 지나쳐 가파른 언덕을 끝없이 오르다 보면 전과는 다른 한적한 거리가 나타난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물 하나 없는 그곳은 뜨문뜨문 보이는 상업 공간 외에는 모두 거주 공간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로공작은 그 골목 언덕에 위치해 있다. 주택을 개조한 이로공작은 간판 하나 없이 담담히 자리
해 자칫 발견하지 못한 채 지나치기 십상이다.

 
블랙 컬러로 마감된 외관은 한쪽 벽면이 원형으로 뚫려있다. 그 옆 큼지막하게 새겨진 異路工作(이로공작)이라는 한자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다를 이(異), 길 로(路), 이로공작은 서로 다른 길을 추구하는 다양한 창작자들의 작업실이자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야외 테라스도 담장 없는 개방된 공간으로 구성해 카페를 찾은 손님 외에도 다른 이들이 언덕을 오르다가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실내로 들어서면 전면부의 유리창 사이로 들어온 빛이 공간을 밝힌다. 창가에는 바랜듯한 색감의 커튼이 처져 있어 내부로의 직접적인 햇빛 유입을 차단했다. 어두운 실내에는 노출 콘크리트 천정의 펜던트 조명이 은은함을 더하며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공간 곳곳 배치된 식물은 자칫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외관과 마찬가지로 내부 역시 콘크리트 벽을 뚫어 거친 느낌을 살렸다. 파사드와 동일한 선상에 위치한 보이드 공간은 확장감있는 공간감을 연출한다. 뿐만 아니라 한쪽 구석의 벽을 일부 제거한 독특한 구조로 고객의 흥미를 유발한다. 창작자들이 직접 제작한 황동 소품을 비롯해 자개장과 한의원에서나 볼법한 약장 등의 고가구는 이러한 공간과 어우러지며 이로공작 특유의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기사 고민주
사진 여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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